목 차

채 근 담 9편(上)

161장

道是一種公衆物事, 當隨人而接引. 學是一個尋常家飯, 當隨事而警惕.

도시일종공중물사, 당수인이접인. 학시일개심상가반, 당수사이경척.

도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적인 것이니, 사람을 따라 이끌어야 하고, 배움은 일상적인 집밥과 같으니, 일마다 경계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1. 道是一種公衆物事, 當隨人而接引 (도시일종공중물사, 당수인이접인)
道是一種公衆物事(도시일종공중물사) : 도(道)는 하나의(一種) 공공연한(公衆) 물건(物事, 사물, 진리)이다. '도(道)'는 보편적인 진리,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혹은 대자연의 이치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고 공유할 수 있는 것임을 비유합니다.
當隨人而接引(당수인이접인) : 마땅히(當) 사람(人)에 따라(隨) 진리를 이끌어주어야(接引) 한다. '접인(接引)'은 사람들을 맞이하여 이끌어준다는 뜻입니다. 도를 전파할 때는 상대방의 수준과 성향에 맞춰 유연하게 설명하고 이끌어주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억지로 강요하거나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만인에게 열려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 學是一個尋常家飯, 當隨事而警惕 (학시일개심상가반, 당수사이경척)
學是一個尋常家飯(학시일개심상가반) : 학문(學)은 하나의(一個) 평범한(尋常) 집밥(家飯)과 같다. '집밥'은 매일 먹는 일상적인 음식처럼, 학문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접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비유합니다. 일상생활과 분리된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삶 그 자체와 밀접하다는 뜻입니다.
當隨事而警惕(당수사이경척) : 마땅히(當) 일(事)에 따라(隨) 경계해야(警惕) 한다. 즉,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일상생활의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경계하며 고쳐나가는 실천적인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과 통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도(道)'와 '학(學)'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제시합니다. '도(道)'는 만인이 함께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이므로 포용적으로 전파해야 하고, '학(學)'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며 실천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며, 보편적 진리인 '도(道)'는 포용적이고 유연하게 전파해야 하며, '학문(學文)'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며 실천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이론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162장

信人者, 人未必盡誠, 己則獨誠矣. 疑人者, 人未必皆詐, 己則先詐矣.

신임자, 인미필진성, 기즉독성의. 의인자, 인미필개사, 기즉선사의.

남을 믿는 사람은 남들이 반드시 모두 진실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홀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의심하는 사람은 남들이 반드시 모두 속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먼저 속이기 때문입니다.

1. 信人者, 人未必盡誠, 己則獨誠矣 (신임자, 인미필진성, 기즉독성의)
信人者(신인자) : “남(人)을 믿는(信) 사람(者)”을 말합니다.
人未必盡誠(인미필진성) : 남들이(人) 반드시(必) 모두(盡) 성실하지(誠) 않을(未)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항상 보답하지 않거나, 심지어 배신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己則獨誠矣(기즉독성의) : 자신만은(己) 홀로(獨) 성실하게(誠) 된다(矣). 즉, 비록 다른 사람이 불성실하더라도, 남을 믿는 과정에서 자신은 오히려 성실함이라는 덕목을 유지하고 강화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자신을 지킨다.'는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2. 疑人者, 人未必皆詐, 己則先詐矣 (의인자, 인미필개사, 기즉선사의)
疑人者(의인자) : “남(人)을 의심하는(疑) 사람(者)”을 말합니다.
人未必皆詐(인미필개사) : 남들이(人) 반드시(必) 모두(皆) 속이지(詐) 않을(未)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己則先詐矣(기즉선사의) : 자신만은(己) 먼저(先) 속이는(詐) 것이 된다(矣). 즉, 남을 의심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그 의심 자체가 자신을 기만하거나, 상대방을 잠재적인 사기꾼으로 간주하여 스스로 속이는 행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의심의 마음이 결국 자신을 불신과 부정적인 틀에 가두고, 나아가 상대를 대할 때도 진정성 없이 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라는 두 가지 태도가 자신에게 미치는 본질적인 영향을 설명하며, ‘선한 마음은 자신을 더욱 선하게 만들고, 악한 마음은 자신을 더욱 악하게 만든다.’는 인간 심리의 역설을 보여주며, 타인에 대한 '믿음'은 결국 자신을 더욱 진실하고 올바르게 만들고, '의심'은 결국 자신을 먼저 기만하고 불신하게 만듦을 역설합니다. 즉, 자신의 마음가짐이 외부 세계보다 자신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므로, 항상 선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163장

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念頭忌刻的, 如朔雪陰凝, 萬物遭之而死.

염두관후적, 여춘풍후육, 만물조지이생. 염두기각적, 여삭설음응, 만물조지이사.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한 사람은 마치 따스한 봄바람이 만물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만물이 그를 만나면 살아납니다. 마음이 모질고 각박한 사람은 마치 차가운 눈보라가 음습하게 엉기는 것과 같아서, 만물이 그를 만나면 죽습니다.

1. 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염두관후적, 여춘풍후육, 만물조지이생)
念頭寬厚的(염두관후적) : “마음씀(念頭, 생각, 마음가짐)이 너그럽고(寬) 후한(厚) 사람(的)”을 말합니다. 관대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如春風煦育(여춘풍후육) : 마치(如) 봄바람(春風)이 따뜻하게(煦) 기르는(育) 것 같다. '煦育(후육)'은 따뜻한 기운으로 만물을 기르고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萬物遭之而生(만물조지이생) : 만물(萬物)이 그것(之)을 만나면(遭) 살아난다(生). 즉,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든 관계나 일이 활력을 얻어 번성하게 됨을 비유합니다.
2. 念頭忌刻的, 如朔雪陰凝, 萬物遭之而死 (염두기각적, 여삭설음응, 만물조지이사)
念頭忌刻的(염두기각적) : “마음씀(念頭)이 시기하고(忌) 각박한(刻) 사람(的)”을 말합니다. 타인을 질투하고 인색하며, 비난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如朔雪陰凝(여삭설음응) : 마치(如) 북풍(朔)이 눈(雪)과 함께 꽁꽁(陰凝) 얼어붙게 하는 것 같다. '朔雪陰凝(삭설음응)'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가 모든 것을 얼리고 생기를 잃게 하는 혹독한 추위를 비유합니다.
萬物遭之而死(만물조지이사) : 만물(萬物)이 그것(之)을 만나면(遭) 죽는다(死). 즉, 시기하고 각박한 마음을 지닌 사람 주변은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사람들이 떠나가고, 모든 관계나 일이 시들해지며 결국 파괴됨을 비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간의 '마음가짐(念頭)'이 주변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자연 현상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너그러움'은 생명을 살리고 번성하게 하는 반면, '각박함'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간의 마음가짐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강조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은 생명을 살리고 번성하게 하는 힘이 있지만, 각박한 마음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이 있으므로, 항상 마음을 너그럽고 따뜻하게 가꾸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164장

爲善, 不見其益, 如草裡東瓜, 自應暗長. 爲惡, 不見其損, 如庭前春雪, 當必潛消.

위선, 불견기익, 여초리동과, 자응암장. 위악, 불견기손, 여정전춘설, 당필잠소.

선을 행해도 그 이익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은 풀 속의 동아와 같아서 저절로 몰래 자라나는 것과 같고, 악을 행해도 그 손해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은 뜰 앞의 봄눈과 같아서 반드시 몰래 녹아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1. 爲善, 不見其益, 如草裡東瓜, 自應暗長 (위선, 불견기익, 여초리동과, 자응암장)
爲善, 不見其益(위선, 불견기익) : 선(善)을 행해도(爲) 그(其) 이로움(益)을 보지(見) 못한다(不). 이는 선행이 즉각적인 보상이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를 의미합니다.
如草裡東瓜, 自應暗長(여초리동과, 자응암장) : 마치(如) 풀(草) 속에(裡) 있는 동아(東瓜, 겨울 호박) 같아서, 마땅히(應) 저절로(自) 몰래(暗) 자란다(長). 동아가 무성한 풀 속에 숨어 자라듯이, 선행의 공덕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쌓여 나중에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음덕(陰德)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 爲惡, 不見其損, 如庭前春雪, 當必潛消 (위악, 불견기손, 여정전춘설, 당필잠소)
爲惡, 不見其損(위악, 불견기손) : 악(惡)을 행해도(爲) 그(其) 손해(損)를 보지(見) 못한다(不). 이는 악행이 즉각적인 처벌이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를 의미합니다.
如庭前春雪, 當必潛消(여정전춘설, 당필잠소) : 마치(如) 뜰 앞(庭前)의 봄(春) 눈(雪) 같아서, 마땅히(當) 반드시(必) 몰래(潛) 사라진다(消). 봄 눈이 햇살을 받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지듯이, 악행의 결과는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스스로 소멸되거나 나쁜 결과로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리를 설명하며,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그 결과가 드러남을 자연 현상에 비유하여 강조하며,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자연의 이치처럼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드러남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눈앞의 이익이나 손해'에 연연하지 말고, 묵묵히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165장

遇故舊之交, 意氣要愈新, 處隱微之事, 心迹宜愈顯. 待衰朽之人, 恩禮當愈隆.

우고구지교, 의기요유신, 처은미지사, 심적의유현. 대쇠후지인, 은례당유융.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는 마음과 기운을 더욱 새롭게 해야 하고, 은밀하고 미묘한 일을 처리할 때는 마음과 자취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쇠약하고 늙은 사람을 대할 때는 은혜와 예의를 더욱 융숭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1. 遇故舊之交, 意氣要愈新, 處隱微之事, 心迹宜愈顯 (우고구지교, 의기요유신, 처은미지사, 심적의유현)
遇故舊之交(우고구지교) : 오래된(故舊) 친구(交)를 만날(遇) 때를 말합니다.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意氣要愈新(의기요유신) : 의기(意氣, 마음가짐, 기상)가 더욱(愈) 새로워야(新) 한다(要). 이는 오래된 관계일수록 소홀해지기 쉬운데,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열정적이고 신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관계의 진부함을 경계하고 늘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處隱微之事(처은미지사) : 은밀하고(隱微) 미묘한(事) 일을 처리할(處) 때를 말합니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기 쉬운 복잡한 상황, 혹은 개인의 명예와 관련된 일을 의미합니다.
心迹宜愈顯(심적의유현) : 마음의 흔적(心迹, 진심, 의도)이 마땅히(宜) 더욱(愈) 명확해야(顯) 한다. 즉,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진심과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어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을 사전에 차단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2. 待衰朽之人, 恩禮當愈隆 (대쇠후지인, 은례당유융)
待衰朽之人(대쇠후지인) : 쇠약하고(衰) 늙은(朽) 사람(人)을 대할(待) 때를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나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恩禮當愈隆(은례당유융) : 은혜(恩)와 예절(禮)이 마땅히(當) 더욱(愈) 성대해야(隆) 한다. 즉,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는 더욱 각별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강자에 대한 아첨이나 약자에 대한 멸시를 경계하는 군자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간관계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세 가지 상황별 처세술을 제시합니다. 오랜 관계, 은밀한 상황, 약자 대우에 있어서 진정성과 세심함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인간관계의 깊이와 복잡성에 따라 적절하고 지혜로운 처세술이 필요함을 제시합니다. 오랜 관계에서는 신선함을 유지하고, 민감한 일에서는 진심을 명확히 하며, 약자에게는 더욱 큰 존중과 배려를 베풀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166장

勤者, 敏於德義, 而世人借勤而濟其貧. 儉者, 淡於貨利, 而世人假儉以飾其吝. 君子持身之符, 反爲小人營私之具矣, 惜哉.

근자, 민어덕의, 이세인차근이제기빈. 검자, 담어화리, 이세인가검이식기린. 군자지신지부, 반위소인영사지구의, 석재.

부지런함은 덕과 의로움에 민첩해야 하는 것이나, 세상 사람들은 부지런함을 빌려 가난을 구제합니다. 검소함은 재물과 이익에 담백해야 하는 것이나, 세상 사람들은 검소함을 빌려 인색함을 꾸밉니다. 군자가 몸을 지키는 부적이 오히려 소인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도구가 되니,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1. 勤者, 敏於德義, 而世人借勤而濟其貧 (근자, 민어덕의, 이세인차근이제기빈)
勤者, 敏於德義(근자, 민어덕의) : 부지런한(勤) 사람(者)은 덕(德)과 의로움(義)에 민첩해야(敏) 한다(於). 여기서 '勤(근)'의 본래 의미는 도덕적 수양과 의로운 일에 부지런히 힘쓰는 것을 뜻합니다.
而世人借勤而濟其貧(이세인차근이제기빈) : 그러나(而) 세상(世) 사람들은(人) 부지런함(勤)을 빌려(借) 그(其) 가난(貧)을 구제한다(濟). 즉, '근면'의 본래 목적은 도덕적 완성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세속적인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입니다.
2. 儉者, 淡於貨利, 而世人假儉以飾其吝 (검자, 담어화리, 이세인가검이식기린)
儉者, 淡於貨利(검자, 담어화리) : 검소한(儉) 사람(者)은 재물(貨)과 이익(利)에 담담해야(淡) 한다(於). '儉'의 본래 의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뜻합니다.
而世人假儉以飾其吝(이세인가격이식기린) : 그러나(而) 세상(世) 사람들은(人) 검소함(儉)을 가장하여(假) 그(其) 인색함(吝)을 꾸민다(飾). 즉, '검소함'의 본래 목적은 물욕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겉치레로 삼아 실제로는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본성을 감추려 한다는 지적입니다.
3. 君子持身之符, 反爲小人營私之具矣, 惜哉 (군자지신지부, 반위소인영사지구의, 석재)
君子持身之符(군자지신지부) : 군자(君子)가 몸(身)을 지키는(持) 부절(符, 부적, 표준, 징표)이다. '符'는 어떤 것을 지키는 표식이나 기준, 혹은 합당한 증거를 의미합니다. 즉, '근면'과 '검소'는 군자가 자신을 수양하고 올바르게 처신하는 중요한 원칙이자 상징입니다.
反爲小人營私之具矣(반위소인영사지구야) : 도리어(反) 소인(小人)이 사사로운(私) 이익(營)을 꾀하는(具) 도구(之)가 된다(爲). '營私(영사)'는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본래 고결한 군자의 덕목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소인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惜哉(석재) : 애석하도다! (哉는 감탄의 어조사). 이러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개탄을 표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근검(勤儉)'이라는 군자의 미덕이 세속적인 욕망과 결합 될 때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며, 미덕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근면과 검소라는 미덕이 본래의 정신적 가치를 상실하고 세속적인 욕망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비탄하며, 미덕의 진정한 의미를 잃지 않고 본래의 순수함을 지켜야 함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167장

憑意興作爲者, 隨作則隨止, 豈是不退之輪? 從情識解悟者, 有悟則有迷, 終非常明之燈.

빙의홍작위자, 수작즉수지, 기시불퇴지륜? 종정식해오자, 유오즉유미, 종비상명지등.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하다가 곧 그만두니, 어찌 영원히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겠습니까? 감정과 지식으로 깨달으려는 사람은, 깨달음이 있으면 미혹함도 있으니, 끝내 영원히 밝은 등불이 되지 못합니다.

1. 憑意興作爲者, 隨作則隨止, 豈是不退之輪? (빙의홍작위자, 수작즉수지, 기시불퇴지륜?)
憑意興作爲者(빙의흥작위자) : “의욕(意興, 일시적인 기분이나 흥미)에만 의지하여(憑) 일을 하는(作爲) 사람(者)”을 말합니다. 꾸준한 노력이나 확고한 신념 없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隨作則隨止(수작즉수지) : 시작하는(作) 대로(隨) 곧(則) 멈춘다(止). 즉, 일시적인 흥미나 충동에 의해 일을 시작하지만, 곧 흥미를 잃으면 포기하게 되는 변덕스러운 태도를 의미합니다.
豈是不退之輪?(기시불퇴지륜?) : “어찌(豈) 물러서지(不退) 않는(之) 수레바퀴(輪)이겠는가?”는 반문입니다. '不退之輪(불퇴지륜)'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멈추지 않는 것을 비유합니다. 감정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꾸준히 정진하며 목표를 이룰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2. 從情識解悟者, 有悟則有迷, 終非常明之燈 (종정식해오자, 유오즉유미, 종비상명지등)
從情識解悟者(종정식해오자) : “감정(情)과 인식(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從) 깨닫는(解悟) 사람(者)”을 말합니다.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이해나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기반한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有悟則有迷(유오즉유미) : 깨달음(悟)이 있으면(有) 곧(則) 미혹됨(迷)도 있다(有). 즉, 감정적인 깨달음은 일시적이며,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다시 혼란과 미혹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終非常明之燈(종비상명지등) : 끝내(終) 늘(常) 밝은(明) 등불(燈)이 아니다(非). '常明之燈(상명지등)'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진리를 비추는 등불을 비유합니다. 감정적 깨달음은 결코 지속적인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며, 어둠 속에서 길을 잃게 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일시적인 의욕이나 감정적인 깨달음'의 한계를 지적하며, '확고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지혜'만이 진정한 성취와 깨달음을 가져올 수 있음을 강조하며, 순간적인 감정이나 피상적인 이해에 의존하는 삶의 태도는 결국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취와 깨달음은 '변치 않는 의지와 심오한 지혜'를 통해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168장

人之過誤, 宜恕, 而在己則不可恕. 己之困辱, 當忍, 而在人則不可忍.

인지과오, 의서, 이재기즉불가서. 기지곤욕, 당인, 이재인즉불가인.

남의 잘못은 용서하되, 자신의 잘못은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곤란과 수모는 참아야 하지만, 남의 곤란과 수모는 참아서는 안 됩니다.

1. 人之過誤, 宜恕, 而在己則不可恕 (인지과오, 의서, 이재기즉불가서)
人之過誤, 宜恕(인지과오, 의서) : 다른 사람(人)의 과오(過)와 실수(誤)는 마땅히(宜) 용서해야(恕) 한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而在己則不可恕(이재기즉불가서) : 그러나(而) 자신에게(己)는 곧(則) 용서해서는(恕) 안 된다(不可).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타인의 과오를 대하듯 너그럽게 넘어가서는 안 되며, 엄격하게 반성하고 책임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2. 己之困辱, 當忍, 而在人則不可忍 (기지곤욕, 당인, 이재인즉불가인)
己之困辱, 當忍(기지곤욕, 당인) : 자신(己)의 곤경(困)과 모욕(辱)은 마땅히(當) 참아야(忍) 한다. 스스로 어려움이나 불명예를 겪을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야 함을 강조합니다.
而在人則不可忍(이재인즉불가인) : 그러나(而) 다른 사람(人)에게(在)는 곧(則) 참아서는(忍) 안 된다(不可). 즉, 타인이 부당한 곤경이나 모욕을 당할 때는 방관하지 말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나서서 도와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라는 군자의 윤리적 태도를 대비시키며, 도덕적 기준의 적용에 있어 이중적인 잣대가 아닌 '타인을 향한 넓은 마음과 자신을 향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군자의 진정한 도덕성은 '타인을 향한 관용과 이해심'에서 비롯되며, 동시에 '자신을 향한 엄격한 자기 수양'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또한 자신의 고통은 인내하되,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정의롭게 행동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169장

能脫俗, 便是奇, 作意尙奇者, 不爲奇而爲異. 不合汚, 便是淸, 絶俗求淸者, 不爲淸而爲激.

능탈속, 변시기, 작의상기자, 불위기이위리. 불합오, 변시청, 절속구청자, 불위청이위격.

능히 속됨을 벗어나는 것이 곧 기이함이니, 일부러 기이함을 숭상하는 사람은 기이함이 아니라 괴이함이 됩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맑음이니, 세속을 끊고 맑음을 구하는 사람은 맑음이 아니라 격렬함이 됩니다.

1. 能脫俗, 便是奇, 作意尙奇者, 不爲奇而爲異 (능탈속, 변시기, 작의상기자, 불위기이위리)
能脫俗, 便是奇(능탈속, 변시기) : 능히(能) 속됨을(俗) 벗어나는(脫) 것이 곧(便) 기이함(奇)이다. '탈속(脫俗)'은 세속적인 가치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속세를 초월하는 태도 그 자체가 이미 특별하고 기이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作意尙奇者, 不爲奇而爲異(작의상기자, 불위기이위리) : 억지로(作意) 기이함을(奇) 숭상하는(尙) 자(者)는, 기이한(奇) 것이 아니라(不爲) 이상한(異) 것이 된다(爲). '作意(작의)'는 의도적으로 꾸미거나 가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에게 특별하게 보이려고 억지로 기이한 행동을 하거나 독특함을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기이함이 아니라, 오히려 괴팍하거나 비정상적인 모습(異)으로 비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2. 不合汚, 便是淸, 絶俗求淸者, 不爲淸而爲激 (불합오, 변시청, 절속구청자, 불위청이위격)
不合汚, 便是淸(불합오, 변시청) : 더러움(汚)에 합류하지(合) 않는(不) 것이 곧(便) 청결함(淸)이다. '不合汚(불합오)'는 세속적인 타락이나 부패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청렴함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청결한 덕임을 강조합니다.
絶俗求淸者, 不爲淸而爲激(절속구청자, 불위청이위격) : 속세(俗)를 끊고(絶) 청결함(淸)을 구하는(求) 자(者)는, 청결한(淸) 것이 아니라(不爲) 과격한(激) 것이 된다(爲). '絶俗(절속)'은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거나 극단적으로 세속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나치게 결벽증적으로 세속을 멀리하고 청렴함을 추구하는 것은 본래의 청결함이 아니라, 타인과 단절하고 고립되는 과격한 태도(激)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탈속(脫俗)'과 '불합오(不合汚)'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가치가 지나치게 인위적이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구될 때, 본래의 의미를 잃고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중용(中庸)의 미덕'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탈속'과 '청렴'이라는 미덕을 추구할 때, '자연스러움과 중용'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억지스러운 특별함이나 극단적인 결벽증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세속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170장

恩宜自淡而濃, 先濃後淡者, 人忘其惠. 威宜自嚴而寬, 先寬後嚴者, 人怨其酷.

은의자담이농, 선농후담자, 인망기혜. 위의자엄이관, 선관후엄자, 인원기혹.

은혜는 마땅히 옅은 것에서 짙어지는 것이 좋으니, 먼저 짙었다가 나중에 옅어지면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위엄은 마땅히 엄격한 것에서 너그러워지는 것이 좋으니, 먼저 너그러웠다가 나중에 엄격해지면 사람들이 그 혹독함을 원망하게 됩니다.

1. 恩宜自淡而濃, 先濃後淡者, 人忘其惠 (은의자담이농, 선농후담자, 인망기혜)
恩宜自淡而濃(은의자담이농) : 은혜(恩)는 마땅히(宜) 처음에는 담담하게(淡) 시작하여(自) 점차(而) 진해져야(濃) 한다. 이는 은혜를 베풀 때 처음부터 너무 과하게 주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진심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효과적임을 의미합니다.
先濃後淡者, 人忘其惠(선농후담자, 인망기혜) : 먼저(先) 진하게(濃) 주고 나중에(後) 담담해지는(淡) 사람(者)은, 사람들이(人) 그(其) 은혜(惠)를 잊는다(忘).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 소홀해지면, 사람들은 처음의 은혜보다 나중의 소홀함을 기억하고 서운해하며 결국 은혜를 잊게 된다는 인간 심리를 지적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와 유사합니다.
2. 威宜自嚴而寬, 先寬後嚴者, 人怨其酷 (위의자엄이관, 선관후엄자, 인원기혹)
威宜自嚴而寬(위의자엄이관) : 위엄(威)은 마땅히(宜) 처음에는 엄격하게(嚴) 시작하여(自) 점차(而) 너그러워져야(寬) 한다. 처음에는 엄격한 원칙과 기강을 세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점차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리더십이라는 의미입니다.
先寬後嚴者, 人怨其酷(선관후엄자, 인원기혹) : 먼저(先) 너그럽게(寬) 대하고 나중에(後) 엄격해지는(嚴) 사람(者)은, 사람들이(人) 그(其) 잔혹함(酷)을 원망한다(怨). 처음에는 풀어주고 자유를 주다가 나중에 갑자기 엄격하게 통제하면, 사람들은 변화된 태도에 대해 반발심을 느끼고 지도자의 잔인함(酷)을 원망하게 된다는 인간 심리를 지적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간관계에서 '은혜(恩)'와 '위엄(威)'을 베풀고 행사하는 데 있어서 '점진적인 태도'와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사람의 심리를 고려한 현명한 처세술을 제시하며, 인간관계에서 '은혜'와 '위엄'을 행사할 때, 점진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처음부터 과도하거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관계를 해치고 사람들의 원망을 살 수 있으므로, 심리적인 측면을 고려한 섬세한 처세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171장

心虛則性現, 不息心而求見性, 如撥波覓月. 意淨則心淸, 不了意而求明心, 如索鏡增塵.

심허즉성현, 불식심이구견성, 여발파멱월. 의정즉심청, 불료의이구명심, 여색경증진.

마음을 비우면 본성이 드러나니, 마음을 쉬지 않고 본성을 보려 하는 것은 마치 물결을 헤치며 달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뜻을 깨끗이 하면 마음이 맑아지니, 뜻을 깨끗이 하지 않고 마음의 밝음을 구하는 것은 마치 거울을 찾으면서 먼지를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1. 心虛則性現, 不息心而求見性, 如撥波覓月 (심허즉성현, 불식심이구견성, 여발파멱월)
心虛則性現(심허즉성현) : 마음(心)이 비워지면(虛) 곧(則) 본성(性)이 드러난다(現). '心虛(심허)'는 마음속의 잡념, 욕심, 편견 등을 비워내어 텅 빈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비워지면 본래 인간이 지닌 순수하고 밝은 본성(性)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不息心而求見性(불식심이구견성) : 마음을 쉬게(息) 하지 않고(不) 본성(性)을 보려(見) 함(而)을 구한다(求). '息心(식심)'은 마음의 번뇌와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속의 번잡함을 가라앉히지 않고 억지로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如撥波覓月(여발파멱월) : 마치(如) 물결(波)을 헤치며(撥) 달(月)을 찾는(覓) 것과 같다. 물결치는 수면에서는 달의 그림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듯이, 마음의 번뇌가 가득한 상태에서는 본성을 볼 수 없음을 비유합니다.
2. 意淨則心淸, 不了意而求明心, 如索鏡增塵 (의정즉심청, 불료의이구명심, 여색경증진)
意淨則心淸(의정즉심청) : 뜻(意)이 깨끗해지면(淨) 곧(則) 마음(心)이 맑아진다(淸). '意淨(의정)'은 의지나 생각의 방향이 순수하고 올바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뜻이 바르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不了意而求明心(불료의이구명심) : 뜻(意)을 깨닫지(了) 못하고(不) 마음(心)이 밝아지기를(明) 구한다(求). '了意(료의)'는 의지의 본질이나 방향을 올바로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의지나 생각의 방향을 바로잡지 않고 억지로 마음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如索鏡增塵(여색경증진) : 마치(如) 이미 흐린 거울(鏡)에 먼지(塵)를 더하는(增) 것과 같다. 거울의 먼지를 털어내지 않고 밝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소용없듯이, 뜻을 바로잡지 않으면 마음이 맑아질 수 없음을 비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마음 수양'의 핵심 원리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며, 진정한 깨달음은 외부에서 억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번뇌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드러남을 강조합니다. 이는 불교나 도가 사상과 깊이 연관되며, 진정한 마음의 깨달음과 본성의 발현은 외부의 억지스러운 노력이나 추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잡념과 번뇌, 그리고 그릇된 의지를 제거하는 '자기 정화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짐을 강조합니다.

172장

我貴而人奉之, 奉此峨冠大帶也. 我賤而人侮之, 侮此布衣草履也. 然則原非奉我, 我胡爲喜? 原非侮我, 我胡爲怒?

아귀이인봉지, 봉차아관대대야. 아천이인모지, 모차포의초리야. 연즉원비봉아, 아호위희? 원비모아, 아호위노?

내가 귀하게 되니 남들이 받드는 것은, 이 높은 관과 큰 띠를 받드는 것이 됩니다. 내가 천하게 되니 남들이 업신여기는 것은,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본래 나를 받드는 것이 아닌데, 내가 어찌 기뻐하겠습니까? 본래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데, 내가 어찌 화를 내겠습니까?

1. 我貴而人奉之, 奉此峨冠大帶也 (아귀이인봉지, 봉차아관대대야)
我貴而人奉之(아귀이인봉지) : 내가(我) 귀하여(貴, 신분이 높아) 사람들이(人) 나를 받들면(奉之).
奉此峨冠大帶也(봉차아관대대야) : 이는(此) 솟은 관(峨冠)과 큰 띠(大帶)를 받드는(奉) 것이다(也). '峨冠大帶(아관대대)'는 높은 벼슬아치가 입는 복장으로, 높은 신분과 지위를 상징합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외적인 지위와 명예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2. 我賤而人侮之, 侮此布衣草履也 (아천이인모지, 모차포의초리야)
我賤而人侮之(아천이인모지) : 내가(我) 천하여(賤, 신분이 낮아) 사람들이(人) 나를 업신여기면(侮之).
侮此布衣草履也(모차포의초리야) : 이는(此) 베옷(布衣)과 짚신(草履)을 업신여기는(侮) 것이다(也). '布衣草履(포의초리)'는 평범하고 천한 신분을 상징합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외적인 초라한 모습이나 낮은 신분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3. 然則原非奉我, 我胡爲喜? 原非侮我, 我胡爲怒? (연즉원비봉아, 아호위희? 원비모아, 아호위노?)
然則原非奉我, 我胡爲喜?(연즉원비봉아, 아호위희?) : 그렇다면(然則) 원래(原) 나를(我) 받든(奉) 것이 아니거늘(非), 내가(我) 어찌(胡) 기뻐하겠는가(爲喜)? 외부의 칭송이나 존경이 자신의 본질과 무관하다면, 그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는 반문입니다.
原非侮我, 我胡爲怒?(원비모아, 아호위노?) : 원래(原) 나를(我) 업신여긴(侮) 것이 아니거늘(非), 내가(我) 어찌(胡) 노하겠는가(爲怒)? 외부의 비난이나 경멸이 자신의 본질과 무관하다면, 그것에 분노할 필요가 없다는 반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간이 외부의 평가(타인의 존경이나 경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허망함을 지적하며, 진정한 자아는 외적인 신분이나 소유물과 관계없이 내면에 존재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무아(無我)'적 관점과 통하며, 사람들이 외적인 신분이나 소유물에 따라 자신을 대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내면에 있으며, 외부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는 초연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173장

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 古人此等念頭, 是吾人一點生生之機. 無此, 便所謂"土木形骸"而已.

위서상류반, 연아불점등. 고인차등염두, 시오인일점생생지기. 무차, 변소위"토목형해"이이.

『쥐를 위해 항상 밥을 남겨두고, 나방을 불쌍히 여겨 등불을 켜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옛사람의 이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한 점 생생지기(生生之機)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이른바 『흙과 나무로 만든 형체』일 뿐입니다.

1. 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 (위서상류반, 연아불점등)
爲鼠常留飯(위서상류반) : 쥐(鼠)를 위해(爲) 늘(常) 밥(飯)을 남겨둔다(留). 미물인 쥐에게도 먹을 것을 베풀어 생명을 존중하는 지극한 자비심을 보여줍니다.
憐蛾不點燈(연아불점등) : 나방(蛾)이 불쌍하여(憐) 등불(燈)을 켜지(點) 않는다(不). 나방이 불에 타 죽을까 염려하여 등불을 켜지 않는 행위로, 역시 작은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2. 古人此等念頭, 是吾人一點生生之機 (고인차등염두, 시오인일점생생지기)
古人此等念頭(고인차등염두) : 옛사람들(古人)의 이러한(此等) 마음가짐(念頭). 즉, 앞서 언급된 지극한 자비심을 말합니다.
是吾人一點生生之機(시오인일점생생지기) : 우리(吾人) 인간의 한 점(一點) 생생(生生, 끊임없이 생겨나는 생명력)하는 기틀(機, 근원, 동력)이다. '生生(생생)'은 “주역”의 '생생불식(生生不息)'에서 유래한 것으로, 만물이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비심이 인간의 본질적인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3. 無此, 便所謂“土木形骸”而已 (무차, 변소위“토목형해”이이)
無此, 便所謂“土木形骸”而已(무차, 변소위“토목형해”이이) : 이것이(此, 자비심) 없으면(無), 곧(便) 이른바(所謂) '흙(土)과 나무(木)로 된 형체(形骸)'일 뿐이다(而已). '土木形骸(토목형해)'는 생명력 없는 흙이나 나무 조각처럼, 겉모습은 사람일지라도 내면에 진정한 생명력이나 인간성이 없는 상태를 비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지극한 자비심'과 '만물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러한 마음이 곧 인간을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 됨의 증표'임을 역설하며, 만물에 대한 깊은 자비심과 연민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진정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원천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인간은 겉모습만 그럴듯할 뿐 내면은 죽은 존재와 다름없음을 역설합니다.

174장

心體, 便是天體. 一念之喜, 景星慶雲, 一念之怒, 震雷暴雨. 一念之慈, 和風甘露, 一念之嚴, 烈日秋霜. 何者少得? 只要隨起隨滅, 廓然無碍, 便與太虛同體.

심체, 변시천체. 일념지희, 경성경운, 일념지노, 진뇌폭우. 일념지자, 화풍감로, 일념지엄, 열일추상. 하자소득? 지요수기수멸, 곽연무애, 변여태허동체.

마음의 본체는 곧 하늘의 본체와 같으니, 한 번의 기뻐하는 생각은 상서로운 별이나 경사스러운 구름과 같고, 한 번 성내는 생각은 우레나 폭우와 같습니다. 한 번의 자애로운 생각은 화창한 바람과 단 이슬과 같고, 한 번의 엄격한 생각은 뜨거운 해나 차가운 서리와 같습니다.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따라, 넓고 텅 비어 걸림이 없으면, 넓은 하늘과 한 몸이 됩니다.

1. 心體, 便是天體. 一念之喜, 景星慶雲, 一念之怒, 震雷暴雨. 一念之慈, 和風甘露, 一念之嚴, 烈日秋霜 (심체, 변시천체. 일념지희, 경성경운, 일념지노, 진뇌폭우. 일념지자, 화풍감로, 일념지엄, 열일추상)
心體, 便是天體(심체, 변시천체) : 마음의 본체(心體)는 곧(便) 천지(天)의 본체(體)이다. '心體(심체)'는 마음의 본질적인 실체, '天體(천체)'는 우주 자연의 본질적인 실체를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 소우주(小宇宙)로서 대우주(大宇宙)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표현합니다.
一念之喜, 景星慶雲(일념지희, 경성경운) : 한 생각(一念)의 기쁨(喜)은 상서로운 별(景星)과 경사스러운 구름(慶雲)과 같다.
一念之怒, 震雷暴雨(일념지노, 진뢰폭우) : 한 생각(一念)의 분노(怒)는 우레(震雷)와 폭우(暴雨)와 같다.
一念之慈, 和風甘露(일념지자, 화풍감로) : 한 생각(一念)의 자비(慈)는 온화한 바람(和風)과 단 이슬(甘露)과 같다.
一念之嚴, 烈日秋霜(일념지엄, 열일추상) : 한 생각(一念)의 엄격함(嚴)은 뜨거운 태양(烈日)과 가을 서리(秋霜)와 같다.
2. 何者少得? 只要隨起隨滅, 廓然無碍, 便與太虛同體 (하자소득? 지요수기수멸, 곽연무애, 변여태허동체)
何者少得?(하자소득?) : 이 중 어느 것이라도(何者) 적게(少) 얻을(得) 수 있겠는가? (모든 마음의 감정이 우주적 현상처럼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반문) 즉,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은 각각 자연 현상처럼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영향력과 결과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只要隨起隨滅(지욕수기수멸) : 다만(只)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起) 대로(隨) 곧(隨) 사라지게(滅) 해야 한다(要). 즉,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는 태도를 말합니다.
廓然無碍(곽연무애) : 툭 터져(廓然) 거리낌이(碍) 없으면(無). 마음이 활짝 열리고 아무런 걸림이나 집착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便與太虛同體(변여태허동체) : 곧(便) 태허(太虛, 우주의 근원, 대공간)와 본체가(體) 같아진다(同). 즉,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공(空)의 상태에 이르면, 개인의 마음이 대우주의 본질과 하나가 되어 무한한 자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인간의 마음'이 곧 '대자연의 이치'와 상응하는 거대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마음의 움직임(희로애락)이 자연 현상처럼 막대하고,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대우주와 하나 될 수 있음을 설명하며, 인간의 마음이 소우주로서 대우주의 모든 현상과 상응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을 억지로 제어하기보다,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사라지도록 두어 '텅 빈 상태'에 이르면 대우주와 하나 되는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175장

無事時, 心易昏冥, 宜寂寂而照以惺惺. 有事時, 心易奔逸, 宜惺惺而主以寂寂.

무사시, 심이혼명, 의적적이조이성성. 유사시, 심이분일, 의성성이주이적적.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이 어둡고 흐려지기 쉬우니, 고요한 가운데 깨어있는 마음으로 비추어야 하고,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이 흩어지고 날뛰기 쉬우니, 깨어있는 가운데 고요한 마음으로 주관해야 합니다.

1. 無事時, 心易昏冥, 宜寂寂而照以惺惺 (무사시, 심이혼명, 의적적이조이성성)
無事時, 心易昏冥(무사시, 심이혼명) : 일이 없을(無事) 때(時)는 마음(心)이 쉽게(易) 어두워지고(昏) 혼미해진다(冥). 할 일이 없거나 한가할 때, 마음이 나태해지거나 잡념에 빠져 오히려 흐려지기 쉬운 상태를 말합니다.
宜寂寂而照以惺惺(의적적이조이성성) : 마땅히(宜) 고요하게(寂寂) 있으면서도(而) 깨어 있는(惺惺) 정신으로(以) 비춰야(照) 한다. '寂寂(적적)'은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 '惺惺(성성)'은 정신이 맑고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한가할 때일수록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정신은 늘 명료하게 깨어있어 자신을 살피고 성찰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2. 有事時, 心易奔逸, 宜惺惺而主以寂寂 (유사시, 심이분일, 의성성이주이적적)
有事時, 心易奔逸(유사시, 심이분일) : 일이 있을(有事) 때(時)는 마음(心)이 쉽게(易) 달아나고(奔) 벗어나려(逸) 한다. 바쁘거나 복잡한 일이 있을 때, 마음이 산만해지거나 충동적으로 흐트러지기 쉬운 상태를 말합니다.
宜惺惺而主以寂寂(의성성이주이적적) : 마땅히(宜) 깨어 있는(惺惺) 정신으로(以) 주재하면서(主)도 고요하게(寂寂) 유지해야 한다(而). 즉, 바쁘고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 일을 주도하되, 마음속으로는 고요함과 평정심을 유지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무사(無事)'와 '유사(有事)'라는 두 가지 상황에서 '마음 다스리는 법'을 제시하며, 정적인 '고요함(寂寂)'과 동적인 '깨어있음(惺惺)'의 조화로운 활용을 강조하며, '삶의 모든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를 제시합니다. 평화로울 때는 나태해지지 않도록 깨어있고, 혼란스러울 때는 흔들리지 않도록 고요함을 유지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고요함과 깨어있음의 균형'을 통해 평정심을 지켜야 함을 역설합니다.

176장

議事者, 身在事外, 宜悉利害之情. 任事者, 身居事中, 當忘利害之慮.

의사자, 신재사외, 의실리해지정. 임사자, 신거사중, 당망리해지려.

일을 논의하는 사람은 일 밖에 몸을 두고 마땅히 이해득실의 실정을 자세히 알아야 하고, 일을 맡은 사람은 일 가운데 몸을 두고 마땅히 이해득실의 생각을 잊어야 합니다.

1. 議事者, 身在事外, 宜悉利害之情 (의사자, 신재사외, 의실리해지정)
議事者(의사자) : “일(事)을 논의하는(議) 사람(者)”을 말합니다. 주로 의사 결정권자나 자문하는 입장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身在事外(신재사외) : 몸(身)이 일(事) 밖에(外) 있다(在). 즉, 직접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입장이 아니라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宜悉利害之情(의실리해지정) : 마땅히(宜) 이해관계(利害)의 실정(情, 상황)을 모두(悉) 알아야 한다. 일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긍정적(利)이고 부정적(害)인 측면을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래야만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2. 任事者, 身居事中, 當忘利害之慮 (임사자, 신거사중, 당망리해지려)
任事者(임사자) : “일(事)을 맡은(任) 사람(者)”을 말합니다. 주로 실무자나 일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身居事中(신거사중) : 몸(身)이 일(事) 안에(中) 있다(居). 즉, 직접 일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當忘利害之慮(당망리해지려) : 마땅히(當) 이해관계(利害)에 대한 염려(慮)를 잊어야(忘) 한다. 즉, 일을 직접 수행할 때는 개인적인 득실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오직 맡은 일에만 전념하고 몰입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사심(私心)이 끼어들면 일의 본질이 흐려지고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일을 논의하는 자(의사 결정자)'와 '일을 수행하는 자(실무자)'의 역할에 따른 올바른 태도를 제시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필요한 '객관적 판단'과 '몰입의 정신'을 강조하며,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역할을 수행할 때, 각자의 위치에 따라 필요한 덕목과 태도가 다름을 강조합니다. 결정권자는 철저한 분석과 객관적인 판단력을, 실무자는 사심 없는 몰입과 헌신적인 태도를 가져야만 일이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177장

士君子, 處權門要路, 操履要嚴明, 心氣要和易. 毋少隨而近腥羶之黨, 亦毋過激而犯蜂蠆之毒.

사군자, 처권문요로, 조리요엄명, 심기요화이. 무소수이근성전지당, 역무과격이범봉채지독.

선비가 권세 있는 자리나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행동은 엄격하고 분명하게 하고, 마음은 온화하고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비린내 나는 부패한 권력자를 따르거나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너무 지나치게 격렬하게 행동하여 벌이나 전갈과 같은 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1. 士君子, 處權門要路, 操履要嚴明, 心氣要和易 (사군자, 처권문요로, 조리요엄명, 심기요화이)
士君子, 處權門要路(사군자, 처권문요로) : 선비 군자(士君子)가 권력의 문(權門)과 요직(要路)에 처할(處) 때. 권력의 핵심부에 있거나 중요한 자리에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操履要嚴明(조리요엄명) : 행동거지(操履, 언행)는 엄격하고(嚴) 분명해야(明) 한다(要). '操履(조리)'는 평소의 행동과 지조를 의미합니다. 부패한 환경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원칙과 청렴함을 확고하게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心氣要和易(심기요화이) : 마음가짐(心氣)은 온화하고(和) 부드러워야(易) 한다(要). 겉으로는 엄격한 원칙을 지키되, 내면으로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겉과 속이 모두 강경해서는 안 됩니다.
2. 毋少隨而近腥羶之黨, 亦毋過激而犯蜂蠆之毒 (무소수이근성전지당, 역무과격이범봉채지독)
毋少隨而近腥羶之黨(무소수이근성전지당) : 조금이라도(少) 따라가서(隨) 비린내(腥) 나는(羶) 무리(黨)에 가까이(近) 하지 말라(毋). '腥羶之黨(성전지당)'은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권력 집단을 비유합니다. 아주 사소한 이익이나 유혹 때문에 부패한 세력에 동조하거나 그들과 가까이해서는 안 됨을 경고합니다.
亦毋過激而犯蜂蠆之毒(역무과격이범봉채지독) : 또한(亦) 지나치게(過) 과격하여(激) 벌(蜂)이나 전갈(蠆)의 독(毒)을 범하지(犯) 말라(毋). '蜂蠆之毒(봉채지독)'은 벌이나 전갈이 쏘는 독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앙심을 품게 하는 것을 비유합니다. 부패에 맞서더라도 지나치게 강경하거나 독설을 내뿜는 방식은 오히려 상대의 강한 반발이나 보복(앙심)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권력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선비 군자의 처세술'을 제시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엄격함과 내면의 온화함을 동시에 갖추되, 아첨과 지나친 강경함 모두를 경계하는 '중용의 미덕'을 강조하며, 권력의 중심에 있는 군자가 '부패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는 지혜로운 처세술'을 가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엄격한 원칙과 온화한 태도를 겸비하고, 아첨과 강경함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 함을 역설합니다.

178장

標節義者, 必以節義受謗, 榜道學者,常因道學招尤. 故君子不近惡事, 亦不立善名. 只渾然和氣, 纔是居身之珍.

표절의자, 필이절의수방, 방도학자, 상인도학초우. 고군자불근악사, 역불립선명. 지혼연화기, 재시거신지진.

절의를 표방하는 사람은 반드시 절의로 인해 비방을 받고, 도학을 내세우는 사람은 항상 도학으로 인해 원망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나쁜 일을 가까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좋은 이름을 세우려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연스럽고 온화한 기운을 지니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이 됩니다.

1. 標節義者, 必以節義受謗, 榜道學者,常因道學招尤 (표절의자, 필이절의수방, 방도학자, 상인도학초우)
標節義者, 必以節義受謗(표절의자, 필이절의수방) : 절개(節)와 의리(義)를 내세우는(標) 자(者)는 반드시(必) 절개와 의리(節義) 때문에(以) 비방(謗)을 받게 된다(受). 자신의 절개와 의리를 과도하게 내세우면,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사거나 위선이라는 비난을 받기 쉬움을 의미합니다.
榜道學者,常因道學招尤(방도학자, 상인도학초우) : 도학(道學, 도덕적 학문이나 수행)을 내세우는(榜) 자(者)는 항상(常) 도학(道學) 때문에(因) 비난(尤)을 자초한다(招). '榜(방)'은 방을 붙이듯이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과시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비난이나 불만을 사기 쉬움을 의미합니다. 위선적이라는 평가를 받거나, 작은 실수에도 더 큰 비판을 받게 됩니다.
2. 故君子不近惡事, 亦不立善名 (고군자불근악사, 역불립선명)
故君子不近惡事, 亦不立善名(고군자불근악사, 역불립선명) :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나쁜(惡) 일(事)에 가까이(近) 하지 않으면서도(不), 또한(亦) 선한(善) 이름(名)을 세우려(立) 하지 않는다(不). 악한 일을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굳이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이름을 내세우거나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무명(無名)의 덕'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3. 只渾然和氣, 纔是居身之珍 (지혼연화기, 재시거신지진)
只渾然和氣, 纔是居身之珍(지혼연화기, 재시거신지진) : 그저(只) 온화한(和氣) 기운으로(渾然) 혼연일체가 되는(才) 것만이 몸(身)을 지키는(居) 보배(珍)이다. '渾然(혼연)'은 자연스럽게 섞여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和氣(화기)'는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을 의미합니다. 즉, 겉으로 덕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온화하고 조화로운 인품을 갖추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귀한 덕목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미덕을 지나치게 과시하거나 내세우는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군자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과 '온화한 인격'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도를 닦는 자의 외면적 태도'에 대한 중요한 가르치며, 미덕을 과시하는 것은 오히려 비방과 비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군자는 굳이 선한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온화한 인품'을 지니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진정한 덕을 쌓는 길임을 역설합니다.

179장

遇欺詐的人, 以誠心感動之, 遇暴戾的人, 以和氣薰蒸之. 遇傾邪私曲的人, 以名義氣節激勵之. 天下無不入我陶冶中矣.

우기사적인, 이성심감동지, 우폭려적인, 이화기훈증지. 우경사사곡적인, 이명의기절격려지. 천하무불입아도야중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성심으로 감동시키고, 포악한 사람을 만나면 온화한 기운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그릇된 사욕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명예와 절개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하에 내 가르침에 감화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1. 遇欺詐的人, 以誠心感動之, 遇暴戾的人, 以和氣薰蒸之 (우기사적인, 이성심감동지, 우폭려적인, 이화기훈증지)
遇欺詐的人(우기사적인) : 남을 속이는(欺詐) 사람(人)을 만날(遇) 때.
以誠心感動之(이성심감동지) : 성실한(誠心) 마음으로(以) 그를 감동시켜라(感動之).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사람에게는 꾸짖기보다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을 보여주어 그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遇暴戾的人(우폭려적인) : 포악하고(暴) 사나운(戾) 사람(人)을 만날(遇) 때.
以和氣薰蒸之(이화기훈증지) : 온화한(和氣) 기운으로(以) 그를 훈훈하게(薰蒸) 길들여라(之). '薰蒸(훈증)'은 연기가 스며들어 훈훈하게 익히는 것처럼, 서서히 영향을 미쳐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하고 포악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맞서기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으로 서서히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2. 遇傾邪私曲的人, 以名義氣節激勵之 (우경사사곡적인, 이명의기절격려지)
遇傾邪私曲的人(우경사사곡적인) : 마음이 기울어져(傾) 사악하고(邪) 사사롭고(私) 굽은(曲) 사람(人)을 만날(遇) 때.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거나 이기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以名義氣節激勵之(이명의기절격려지) : 명분(名義)과 의기(氣, 기개), 절조(節)로써(以) 그를 격려하라(激勵之). '名義氣節(명의기절)'은 도덕적 대의명분, 올바른 기개와 지조를 의미합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에 빠진 사람에게는 큰 도리나 떳떳한 명분을 제시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정의감을 일깨워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天下無不入我陶冶中矣 (천하무불입아도야중의)
천하(天下)에 내(我) 교화(陶冶) 속에(中) 들어오지(入) 않을(不) 자(無)가 없을(矣) 것이다. '陶冶(도야)'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금속을 제련하듯이, 사람을 교화하고 수양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맞춤형 지혜와 덕으로 사람을 대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은 자신의 영향 아래 교화될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표현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대하는 '교화의 방법'을 제시하며, 각기 다른 문제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맞춤형 지혜와 덕'을 베풀면 능히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며, 사람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획일적인 방식'이 아닌, 상대방의 특성과 문제점에 따라 '진심, 온화함, 대의명분'이라는 각기 다른 덕목을 활용하는 '맞춤형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180장

一念慈祥, 可以醞釀兩間和氣. 寸心潔白, 可以昭垂百代淸芬.

일념자상, 가이온양양간화기. 촌심결백, 가이소수백대청분.

한 번의 너그러운 마음은 능히 가정과 사회에 화목한 기운을 길러낼 수 있으며, 한 치의 맑고 깨끗한 마음은 능히 후세 백대에 맑은 향기를 드리울 수 있습니다.

1. 一念慈祥, 可以醞釀兩間和氣 (일념자상, 가이온양양간화기)
一念慈祥(일념자상) : 한 생각(一念)의 자비롭고(慈) 상냥함(祥). 아주 작은 마음속의 자비심과 친절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可以醞釀兩間和氣(가이온양양간화기) : 천지(兩間, 하늘과 땅 사이, 온 세상)의 온화한(和氣) 기운을(醞釀) 빚어낼(可以) 수 있다. '醞釀(온양)'은 술을 빚듯이 서서히 영향을 미쳐 어떤 분위기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한 개인의 작은 자비심이 온 세상에 평화롭고 조화로운 기운을 퍼뜨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2. 寸心潔白, 可以昭垂百代淸芬 (촌심결백, 가이소수백대청분)
寸心潔白(촌심결백) : 한 치(寸)의 마음(心)이 티 없이 깨끗함(潔白). '寸心(촌심)'은 아주 작고 미미한 마음을 비유합니다. '潔白(결백)'은 결백하고 청렴하며 순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可以昭垂百代淸芬(가이소수백대청분) : 백대(百代, 오랜 후손)에 걸쳐(昭垂) 맑은(淸) 향기(芬)를 드리울(可以) 수 있다. '昭垂(소수)'는 빛나게 드리워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淸芬(청분)'은 맑고 향기로운 명성을 뜻합니다. 즉, 한 개인의 청렴하고 깨끗한 마음가짐이 당대는 물론, 오랜 후세에까지 영원히 빛나는 고결한 명성과 긍정적인 영향을 남길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개인의 작은 마음가짐(생각)'이 세상과 후대에 미치는 엄청난 긍정적인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자비로움'은 당대에 평화를 만들고, '청렴함'은 후대에 영원한 명예를 남길 수 있음을 역설하며, 개인의 작은 '자비심'이 현재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고, '청렴하고 깨끗한 마음'은 미래 세대에게 영원히 기억될 고귀한 유산이 됨을 강조합니다. 즉, 내면의 덕을 닦는 것이 개인을 넘어 세상과 후대에 미치는 지대한 긍정적 영향력을 역설합니다.